부캐의 일상

Apr 26, 2020

코로나로 인해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2월 말 3월부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 유치원을 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었다. 주 7일 동안 놀아주다 보면 사실상 할 수 있는 놀이는 바닥이 난다. 이것저것 찾아봐서 놀아주다가, 어느새 스위치 게임 마리오 파티를 같이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 각자 유투브를 보다 잠들곤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뛰어놀지 못하면 답답해하면서 짜증을 내고 그런 화는 나와 아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래서 3월 정도부터는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 매주 내려갔다. 금요일 퇴근해서 집에오면 9시인데 바로 출발해서 1시간 정도 달리면 도착해서 자고 나면 토요일/일요일은 시골에서 아이들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이들도 좋아했고, 나 역시 연날리기도 하고, 바베큐를 해 먹기도 하고, 별을 보기도 하는 등의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3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마저도 일상이 되어 버렸다.

포도나무를 심다. 🍇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키우던 포도나무가 많이 생각나서 포도나무를 키워보고 싶었다. 작년부터 몇 번 그렇게 말을 할 때마다 포도는 사 먹는거다 라고 부모님 및 아내가 말렸다. 올해도 또 애기를 하니 포기하셨는지 한번 심어보라고 부모님이 묘목시장에 가서 포도나무를 사오셨다.(사실 나는 어디서 사는지도 몰랐다.) 어떻게 심는지도 모른 채 그냥 시키는대로 땅을 파고 비료를 섞고 포도나무를 6그루 심었다. 그리고 그날 파스를 4군데를 붙이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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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포도나무를 심고 나니 물을 주게 되었다. 내가 물을 주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물을 주기 시작했다. 일단 포도나무를 심었으니 기다리면 되겠지 했는데, 지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T자형 지지대를 만들어서 포도나무를 지탱하게 만들었다. 6그루만 심었는데 그럴듯해 보였다. 20그루를 심을 수 있을 것 같은 근본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는데, 놀라운 건 집에 와서 아이들이 포도나무에 물을 주러 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또 주말에 포도나무에 물을 주로 시골에 갔다. 아이들은 이제 토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꽃과 포도나무에 물을 주곤 한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농촌진흥청 사이트에서 포도나무 가지관리에 대한 동영상을 보고 있다.

토마토를 심다. 🍅

이번 주도 별 할 것 없이 시골에 내려간거고 뭔가를 심으려고 하진 않았다. 그런데 모종을 사신다는 부모님이 아내에게 너도 뭐 키우고 싶니? 라고 물었는데 토마토 를 아내가 답을 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여주 시내에서 여러가지 모종을 사고, 토마토 모종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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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많이 부는 토요일 오후였는데, 아내와 삽질을 해가며 토마토 모종을 심기 위한 작업을 했다. 첫 줄을 작업을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마치 관을 묻은 것 같은 느낌의 둑이 만들어졌다. 아내와 나는 뭔가 잘못된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다른 밭에 가서 다시 보고 와서 다시 흙을 쌓고, 비닐을 치고, 모종을 심고, 지지대를 연결했다.

근데 포도나무든 토마토든 단순히 심으면 끝이 아니라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그래서 매주 내려가야 한다. 포도나무는 곰팡이가 있다고 하고(아직 난 잘 모른다.), 토마토는 또 어떤 작업이 필요할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부캐의 생성 : 다른 일상의 시작 👨🏻‍🌾

처음에는 이럴 생각이 아니였다. 그런데 주말에 시골에서 사실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몇 주간의 일상은 집에서와 똑같았다. 드라마 보거나 넷플릭스 보거나, 저녁에는 맥주를 먹고, 일하거나. 그렇지만 이제는 본캐인 개발자의 일상을 조금은 내려놓고 몸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잡초를 뽑기도 하고, 잔디를 깔기도, 뭔가를 심기도 한다. 몸쓰는 일의 장점은 잡생각이 안 든다는 것이다. 물론 단점은 몸이 힘들다는 것인데, 그 정도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서 감수하고 있다.(주중에 컴퓨터를 오래해서 등/어깨가 아픈데 주말에 삽질을 하면 싹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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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주중과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삶에 재미를 주는 것 같다. 이제까지의 주말의 일상은 보통 아이를 보거나 결혼 이전에는 개발 관련 책을 읽거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년간을 살아오다가 이제 본캐와는 다른 부캐의 일상을 주말에 살고 있다. 이제 겨우 2달 정도 되었지만, 뭔가 초보로 돌아간 느낌이라 모든 것이 재미있다. 삽질을 하는 것도, 나무를 심는 것도, 불을 피우는 것도 모든 것이 서툴렀는데 점점 익숙해지고 나도 더 잘하기 위해서 유투브도 보고 여러 가지 자료도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부캐의 주말동안 주중의 생각들이 많이 정리가 되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도 갖게 되는 것 같아서 돌아오는 본캐의 주중을 더 잘 보내게 되는 것 같다. 잡초가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뭘 키우는 것도, 쉽지 않고 이것도 유지보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일상을 보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토마토든 포도든 열매를 볼 때까지는 계속할 것 같다.


#부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