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Oct 02, 2020

이전 글들에서 포도나무를 심고 주말마다 가꾼 부캐의 썰을 풀었는데, 그 이후 포도는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애기하려고 한다. 우선 잡초를 뽑는 것 이상으로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그냥 심어보자는 무계획적인 부분이 많았고 전문적으로 포도재배에 대해서 공부한 것도 아니여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그런 부분들은 그때 그때 몸으로 때웠다.

grape

예를 들면, 무럭무럭 자라나는 포도의 가지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줄기와 잎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진짜 무럭무럭 자랐고 잘 자라고 있구나로 여겼는데 나중에 큰 부채로 다가왔다. 그리고 포도송이가 맺히기 시작했을 때 이게 포도인지 꽃인지 분간을 못했다. 나는 분명 포도라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은 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당연히 포도였고, 그 시간에 봉지를 씌우거나 포도알들을 골라내는 작업들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중간에 포도알들이 겹치면서 터져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grape

그래도 약 40~50 송이 포도에 대해서 봉지씌우는 작업을 했고, 20~30 송이 정도 수확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쉽게도 태풍 하이선이 오는 날이라서 내려가지 못하고 아이들과 함께 포도를 따는 체험을 하지는 못했고 부모님이 대신 따주셨다.

막상 결과물을 받아 봤을 때, 첫 해의 수확이지만 너무 만족스러웠다. 포도를 직접 돈을 주고 사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 보다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주말마다 가서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그렇게 우리가 함께 만든 포도라는 애기를 들려주면서 먹는다는 게 큰 의미가 되었던 것 같다.😊

grape

그렇게 무덥고 비가 많이 왔던 한여름이 가고 포도를 다 따고 난 뒤 다시 포도나무를 보기 시작했다. 포도나무라는게 포도를 따고 나면 뭔가 할 일이 없는 것 처럼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뭘 더 할게 있나 싶었다. 마치 진한 프로젝트가 끝난 느낌이었다.

포도나무에 대해서 유투브를 찾아보면서 수확을 하고 나니 방향을 잘못 심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포도나무를 키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T자의 포도나무가 있다고 할 때, 사람이 정면에서 바라볼때 T자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일자로 보이고 옆으로 심었어야 했는데 잘못 심었다. 결과적으로 가지들이 일직선이 아니라 수직으로 뻗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가지와 잎들이 자라버렸다. 가지들은 잎을 가지고 있고, 줄기들은 서로 엉켜져 버렸다. 이건 진짜 큰 부채가 되었다. 왜냐하면 다시 나무를 뽑아서 일자로 돌린다고 하면 이미 가지들은 수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잘라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아직도 이 부분은 어떻게 할 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상황이긴 하다.

더불어서 키우는 과정에서 높이를 좀 더 높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도나무의 가지 아래쪽에서 포도가 열리는데 현재의 가지들은 내 어깨높이 정도에 와있다. 때문에 봉지를 씌우거나 포도에 뭔가 하려고 하면 거의 준 기마자세를 하고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한여름에 기마자세는 너무 힘들었고, 매번 월요일은 파스를 몇 개씩 붙이고 출근했던 것 같다.

또한 현재 6그루가 일직선으로 되어 있지만, 결국에는 방사형으로 가지들이 뻗어나가고 거기에서 열매가 열리게 해야한다. 그래서 내년에는 몇 그루를 더 어떻게 심을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은 상황이다. 생각보다 많은 포도나무를 키우시는 분들이 많이 유투브를 하시고 그것들을 보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찾아보면서 겨울나기 + 내년 계획을 세워 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들은 지금 일하는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면서

겪는 일들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내가 했던 일련의 결정들은 그 당시 상황에서 옳은 아니면 최선의 기술적 결정이라고 믿었던것 같다. 그리고 그것들은 실제로 그 당시에 효과가 있었고 어느 정도의 결실을 맺었다. 6그루의 포도밭에서는 심는 방향에 대한 결정은 실제로 포도 수확에는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회사에서는 2Q동안 빠르게 기술적 의사결정을 했던 것들이 실제로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

grape

그렇지만 어떤 결정들은 현재 시점에서 부채로 크게 다가왔고, 새로운 계획을 하는데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한다. 포도나무의 방향은 뻗어나가는 가지의 방향을 결정했고, 결국 그것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다시 뽑아서 심어야 하나 혹은 포도밭을 확장하는데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Q에 그라운드 룰과 정책으로 잡았던 것들은 3Q에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몇 개의 부분들은 기술부채로 처리하는 비용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어떤 기능들은 다음 신규기능을 만드는데 새로운 제약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내 포도밭의 상황은 프로젝트를 이어나가는 과정, 팀을 운영해 나가는 과정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더 놀라운 건 바로 그 시점에는 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포도를 수확하고, 다른 포도밭을 보면서 깨달았고, 프로젝트 역시 하나의 분기가 지나고 나서 깨닫는 부분들이 많았다.

사람이기에 어느 순간에 내린 결정이 영원히 완벽할 수는 없다. 그나마 다행인건 올해는 프로젝트와 포도나무, 포도나무와 프로젝트를 번갈아 보면서 빠르게 내 스스로 깨달아 가는 과정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많이 느끼고 경험적으로 배웠다. 메인 직업은 아니지만 부캐의 활동이 개발자로서의 성장 그리고 리드로서의 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내년에도 포도나무는 계속 심을 예정이고 올해 보다 좀 더 많은 수확량을 기대하고 있다. 겨울나기 부터 시작해서 뭔가 재밌는 부캐의 일상이 될 것 같다. 1년생 포도나무가 점점 굵어졌으면 좋겠다. 🍇


#grape  #grape-garden